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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나눔

엔지니어의 에피소드 - 덕적도 발전소 프로젝트 (1)

by eec237 2023.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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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말쯤이었습니다. 효성에 있을 땐데 저희 회사가 서해안의 덕적도라는 섬에 발전소를 짓는 프로젝트를 수주했습니다. 건물은 아니고 그 안에 들어가는 디젤 발전기와 부속 설비들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인천에서 배를 타고 3시간은 가야 하는 먼 섬이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는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참 많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현재 네이버 지도에서 검색한 덕적도 내연 발전소입니다. 이름이 덕연 내연발전소라고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덕적도 주변에 풍력과 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가 개발되고 있고 또 설치되어서 친환경 섬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어서 내연 발전소도 오래지 않아 없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첫 번째로 소개할 에피소드는 도면에 대한 것입니다.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88년 연 초에 한전과 미팅이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도서전화 사업인가 해서 한전에서 좀 큰 섬들에 발전소를 지어주던 그런 사업이었는데 덕적도가 이번에 해당되었던 것입니다. 섬에 살던 분들은 아시겠지만 전기가 없이 지내기가 참 어려운데 조그만 발전기 하나 사서 돌리면 용량이 부족해서 섬 주민들이 너도 나도 전기를 키면 발전기가 죽습니다. 그래서 뭐 냉장고 하나 사서 쓰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87년 연말에 제 직속 상사인 설계팀 과장님이 도면을 먼저 작성해서 가지고 미팅에 참석하라고 독촉을 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예전에 울릉도에 비슷한 프로젝트를 한 경험은 있지만 오래전이고 어떻게 작성해야 할지도 모르고 아무도 경험도 없는데 무작정 그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의 과장님은 학교 10년 선배로 저와 성격이 완전히 반대인 분으로 완전 E형에 한번 한다면 무조건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어서 저는 어쩔 수 없이 이런저런 자료를 참고로 해서 도면을 열심히 그렸습니다.

당시는 CAD도 별로 좋지 않고 컴퓨터도 하드가 없는 그런 시대였는데 열심히 도면을 그려서 88년 초가 돼서 서울의 한전 본사에 미팅을 갔습니다. 제가 그려간 도면을 보신 한전의 과장님이 하시는 말씀이 괜한 수고를 했다고 하시면 한전이 가지고 있는 표준 도면을 주시면서 이대로 다시 그려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연말에 쉬지도 못하고 빡세게 그렸던 저의 도면은 바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고 뻘쭘해진 우리 과장님 안말도 안 하시고 그 후에도 사과 비슷한 것도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사원으로서 당연히 선배나 상사의 지시를 따르는 게 맞지만 이런 비합리적인 지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고생은 내가 하고 보상은 하나도 없고 정말 짜증 나지 않나요? 그 후에도 다른 프로젝트에서 비슷한 일들이 있었지만 제 성격이 그 당시에는 정말 내성적이고 할 말 못 하는 성격이어서 그냥 속으로만 삭일 수밖에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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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에피소드는 발전기와 제어반을 다 만들고 시험을 할 때였습니다. 저희 공장 근처에 당시 쌍용중공업 공장이 있었는데 엔진을 거기서 만들어 조립을 해서 시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래의 그림을 보면 AVR에 S 상의 CT 입력이 들어가는데 저희가 했던 설계는 R, T 두상의 CT를 더해서 AVR로 입력되게 되어 있었습니다.

 

발전기를 병렬 운전하는데 부하가 증가하거나 감소하면 두 대의 발전기 역률이나 위상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야 병렬 운전이 유지가 되는데 실제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이렇게 되면 발전기 병렬 탈조가 일어나 병렬운전을 못 하게 되는 것이었죠. 당일 시험을 마치지 못하고 우리 공장으로 걸어가는데 저와 저의 상사인 과장님 (위의 그분 맞음) 둘이서 한숨을 내쉬며 걱정에 싸여 돌아왔습니다. 병렬 운전이 안되면 한전에서 검사 와서 불합격 맞을 거고 그러면 납품이 안되고 납기 지연이 되면 벌금도 물고 문제가 한두 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원인을 찾으려고 동분서주하고 일본에도 물어보고 며칠을 씨름했나 모릅니다. 고생 고생하고 있던 어느 날 뭔가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쌍용 공장에 있던 Load Bank는 소금물에 전극을 집어넣어 열을 발생시키는 수저항 부하였는데 이 물탱크에 집어넣는 전극이 3상이 마모가 달라서 각상의 전류가 차이 나게 흐르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우리 시스템이 R, T 두상의 전류를 합쳐서 S 상을 만드는 시스템인데 이게 S 상이 안 나오고 다른 전류가 흘러서 두 발전기의 S 상 전류가 서로 다른 현상을 만드는 게 원인으로 밝혀진 겁니다.

CT에서 검출된 전류로 아래 그림처럼 무효 전류에 대한 보상을 해서 두 개의 발전기가 균형을 맞추도록 해주는 것인데 입력이 틀려지니까 무효전력 보상이 잘못되어 두 발전기의 병렬운전을 방해하는 쪽으로 작동한 것입니다.

원인을 발견하고 부랴부랴 CT 두 개를 썼던 회로를 위와 같이 S 상 하나만 쓰는 것으로 현장에서 고쳐서 병렬운전을 했더니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확인하고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전기를 잘 모르거나 병렬운전을 해보신 적이 없으신 분은 잘 이해가 안 되시겠지만 당시엔 저희도 경험이 얼마 없었던 관계로 엄청 마음을 졸였는데 무사히 끝내고 납품을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창원의 쌍용중공업 (지금은 STX 중공업)에서 나와서 저희 공장으로 걸어가던 그 길이 생각날 정도입니다. 35년이나 된 일을 이 정도 기억한다는 것은 이 일이 저에게 깊이 각인될만한 사건이었다는 뜻일 겁니다. 이런 가슴 졸이던 일들이 한두 개가 아니지만 엔지니어로 산다면 어쩔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지금도 이런 막막한 사건에 부딪힌 분이 계신다면 "문제는 고민하면 해결된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계속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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