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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나눔

엔지니어의 에피소드 - 카타르 라판 프로젝트 (Laffan Refinery)

by eec237 2024.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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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프로젝트는 2005년 제가 그간 하던 개인적인 사업을 모두 접고 GS건설에 계약직으로 입사해서 맡은 프로젝트입니다.

 

아래 사진은 카타르 첫 프로젝트가 끝나고 한참 뒤에 Phase II 입찰을 위해 현장 조사차 들렀던 때에 그 라판 공업단지 정문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제가 GS에 입사했을 때 저는 중동은 처음이었습니다. 카타르도 처음이고 GS도 처음이고 낯설고 어리둥절했었죠. 그런데 회사는 참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일을 배분하는데 선임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다 제게 몰아주었습니다. 중동 카타르 생 초보인 저에게 카타르 전력회사에서 수전 받는 일, 기존 공장과 연계하는 일 이런 걸 다 제게 맡겼습니다.

 

처음 가서 그것도 한동안 전기를 떠나 있다 다시 왔는데 아무도 고려해 주지 않습니다. 제가 LE라면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인했을 것 같은데 그 당시 LE는 이전 프로젝트로 인해 지쳐서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매일 출근해서 기존 프로젝트 문제 처리하느라 바빴죠. 그분 입장에서도 회사는 잔인합니다. 무조건 밀어붙여서 일을 맡겼겠죠.

 

LAFFAN REFINERY PROJECT는 그렇게 제게 맡겨졌고 제게 악몽을 선사했습니다. 거의 5년간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는데 다 쓰려면 소설은 한 권 써야 해서 재미있을 에피소드만 몇 개 쓰려고 합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아무래도 수전 업무에 대한 건데요, 수전 즉 전기를 받는다는 것은 플랜트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주요 스케줄에 자리를 떡하고 차지합니다. 전기가 없으면 시운전을 못하니까 반드시 챙기는 스케줄이죠.

 

우리나라 전력회사인 한전도 사람들이 까다로워하는데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카타르의 전력회사는 어떻겠습니까? 저는 스스로 이 지옥으로 들어갔습니다. 부처님도 아닌데요..

 

수전 관련 스펙이 달랑 두 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근데 아무리 읽어도 도대체 뭔 말인지 일수가 없었죠. 내가 뭘 해야 수전을 받을 수 있는지 누구도 내게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도면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와서 찾아가라네요. 카타르에 출장 가서 전기를 받아야 하는 변전소에 가려는데 퍼밋 받는 데 이틀이 걸리고 무인 변전소라 누군가 와서 문 열어주고 직접 찾아서 어떤 도면이 필요한지 도면 번호를 적어서 주면 나중에 복사해서 파일로 보내주는 개념이었죠. 변전소에서 오래 있지도 못합니다. 눈치 보여서..

 

도면 찾는다고 몇 번을 또 방문하고 그래도 다 못 찾고.. 제가 무식했었죠. 에이전트를 찾아서 계약하고 맡겼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직접 다니며 하려니 잘 될 턱이 없었죠.

 

카타르 전력청은 카라마라고 하는데 물과 전기를 담당하는 곳입니다. 카타르인들은 주로 매니저만 하고 실제 일은 대부분 인도, 파키스탄 등등에서 온 사람들이 합니다. 잘해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책임만 안 지면 되는 사람들과 일하는 게 얼마나 끔찍한지..

 

암튼 이런 환경에서 어쨌든 전기를 받아서 공장을 돌린 저를 칭찬합니다. 지금 생각해도 어질어질합니다. 라판에서 도하까지 한 시간 반 걸리는데 매주 도하에 가서 그곳 한인 교회를 다녔습니다. 아마도 카타르에 있던 기간에는 한 번도 안 빠졌을 겁니다. 저의 유일한 낙이고 위로였죠. 찬양대를 하고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또 새로운 한 주간 끔찍이 어려운 일에 도전할 용기를 충전해서 돌아옵니다. 14년 전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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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의 사정에 무지했던 저는 기존 Kharamma 변전소의 Modification Work을 수행하면서 Kharamaa의 사업 부서와 만 일을 했습니다. 기존 GIS Bay Control Panel을 수정하는 것과 추가로 통신과 Interlock을 위한 계전기를 설치할 Panel을 추가로 설치하기로 하고 도면을 제출해서 제작하고 현장에 Panel이 도착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설치하려고 신청을 했더니 그때 나타난 것이 Kharamaa의 Operation & Maintenance 부서였습니다. 설치하려면 이곳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ㅠㅠ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도면을 들고 다른 건물에 있던 그 부서를 방문했습니다. 자기들은 우리 프로젝트 관련 도면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할 말이 없었죠. 목마른 건 저니까 승인을 해달라고 했더니 안된답니다. Panel을 설치할 공간이 없다네요. 그래서 제가 도면을 보여주며 여기 자리가 있지 않냐고 했더니 거기는 다른 것을 설치하려고 이미 예약된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쓴 계전기는 단종이 되어서 더 이상 안 쓴다는 것입니다.

 

저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으로 돌아와서 어떻게 해야 할지 엄청 고민하고 발주처에 보고하여 Khramaa와 발주처 그리고 우리 사이에 미팅을 주선해서 미팅을 했습니다. 영어로 막 떠드는데 무슨 말 하는지 이해도 안 되고 대충 주워들어서 정리를 했습니다. 미팅이 끝나고 돌아와서 3일간 회의록을 완전히 창조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만들어서 회의록을 만들었죠. 결론은 우리 책임이 아니라는 거죠. ㅎㅎ 다행히 발주처가 사인을 해 줘서 (그때 발주처의 엔지니어가 카타르인이었는데 무척 고마웠죠. 저랑 관계가 좀 좋았거든요)

 

그런데 그래도 문제는 가득했습니다. Panel을 설치할 수 없으니 우리가 만든 Panel을 뜯어내서 그 계전기를 기존 Panel 속에 집어넣어야 했고 4회선 수전해서 2회선당 1개의 계전기를 썼는데 안된다고 해서 2개를 더 구매하고 우리 변전소에 설치하는 Panel에 기존 2개의 계전기가 설치된 것을 4개의 계전기가 설치되는 것으로 수정해야 했습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모든 것을 제가 다 해결해야 했죠. ABB를 만나서 수정하는 계약을 하고 변전소 한구석에서 Panel을 뜯어고치고 Kharamaa 변전소에서는 기존 Panel에 계전기 집어넣느라 난리였습니다. 수전 일정은 정해져 있고 정말 최선을 다했죠.

 

지나고 나면 다 잊히지만 정말 그때는 무슨 정신으로 살았는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계획에도 없던 Panel 제작을 현장에서 다 하고 그 비용은 발주처의 책임으로 돌려서 보상을 받고 추가로 구매한 계전기가 일정에 맞게 들어오도록 해서 결국은 잘 마무리했습니다.

 

무사히 수전을 위한 현장의 수정 작업이 모두 마무리되었고 이젠 SAT 즉 Site Acceptance Test만 남았습니다. 이 이야기도 한참 해야 해서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혼자서 다 했다고 했지만 사실은 관련 업체 사람들이 참 많이 도와주고 또 발주처도 나름 도와주어서 끝낼 수 있었죠. 그런데 저희 회사 사람들은 진짜 아무것도 안 도와줬습니다. 저한테 책임을 뒤집어 씌우려고만 했죠. 씁쓸합니다. 지금 생각해도 열받네요. 그 때도 많이 열 받아서 수전이 마무리 될 쯤에 휴가를 가려는데 현장 소장님이 저보고 또 다른 일을 맡으라는 겁니다. 제가 열받아서 휴가 오는 길에 사표를 써서 소장님 책상위에 두고 와죠. 그리고 빌생한 일도 다음 에피소드에서 풀어 보겠습니다

 

결론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도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배워서 팀이 중요한 것을 알고 그 다음 프로젝트 힐 때 신중하게 사람을 뽑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상황도 교훈이 됩니다. 벌써 십 수년이 지났네요. 가끔은 그립기도 하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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