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iday Inn 호텔에서 1박을 하고 새벽에 모닝콜 신청하여 5시경 일어나서 공항 가는 셔틀버스를 탔습니다. 7시쯤이었던가 마이애미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습니다. 하나하나의 과정이 모두 초짜인 저에게는 쉬운 것이 없었죠.
LA에서 비행기를 타고 마이애미에 도착했습니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5시간 이상 걸렸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마이애미는 LA와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스페인어와 영어가 같이 있는 간판에 적응이 잘 안됐죠. 갈아탈 비행기 즉 마이매미에서 콜롬비아 보고타로 가는 비행기를 찾다가 길을 잘 몰라서 공항 스텝으로 보이는 분에게 물었더니 대뜸 스페인어로 말해서 당황스러웠습니다. 다행히 잘 찾아서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새벽부터 설치고 긴장했던지 비행기에 타서 금방 잠이 들었습니다. 한참을 자다가 부산스러운 느낌에 눈을 떴는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비행기가 곧 착륙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비행기가 착륙을 하니까 사람들이 박수를 쳤습니다. 왜? 여긴 이렇게 하나 싶었죠. 사람들이 내리는데 누구는 짐을 두고 내리고 암튼 이상했습니다. 저는 짐을 가지고 내렸는데 아니 여기가 어디지??? 도로 마이애미였습니다. 😵💫
5번인가 주변 사람들한테 물어서 겨우 이해한 게 비행기가 고장이 나서 마이애미로 회항을 했고 기다리고 있으면 비행기 수리해서 다시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펜스를 친 공항의 지역에서 이야기하며 기다리고 뭔가 음료수 서비스 받아서 마시는데 저는 그 음료수 하나 못 받고 멀뚱히 기다려야 했었죠.
얼마나 기다렸을까 비행기에 탑승하라는 안내가 나왔습니다. 다시 비행기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고타 공항에 나오기로 한 사람이 비행기 지연을 모르고 그때 안 나오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자 이거 콜롬비아에서 미아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걱정이 쏟아졌습니다. 자구책으로 옆의 승객들에게 물어보고 나중에 비행기 내리면 호텔을 찾게 안내를 좀 해달라고 부탁도 하고 그랬습니다. 근데 비행기 내릴 때 다 흩어져서 아무도 없더군요. ㅠㅠ 😓
밤 12시나 되어서 콜롬비아 보고타에 내렸습니다. 출국 수속을 하고 나가는데 엄청 조마조마했었죠. 그때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출국장으로 나가는데 키 큰 어떤 남자가 조그만 종이에 제 이름을 써서 들고 있는데 눈물이 왈칵 솟았습니다. 진짜 반갑고 고마웠죠. 😭
비행기 연착을 미리 알고 그 밤에 아내랑 둘이 나온 미쓰이 상사의 콜롬비아 직원이었습니다. 그가 호텔에 저를 내려주고 돌아갔습니다. 너무 피곤한데 시차에 잠을 설치고 아침에 겨우 일어났습니다.
호텔을 비싼 데를 예약해서 출장비가 간당간당해서 옮겨 달라고 할까 하다가 한국인의 자존심이 있지 3일인데 그냥 버텼습니다. 이 미쓰이 상사의 직원이 점심을 사준 적이 있는데 스테이크를 주문했었죠. 언제 스테이크 먹어봤겠습니까 그냥 웰던으로 해달라고 했더니 바싹 구워서 큰 거 두 장이나 나왔더군요. 질겨서 1/4이나 먹고 남겼더니 그 직원이 싸달라고 해서 가져갔습니다. 그때 식당에서 남은 음식 싸갈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아침을 먹고 본격적인 미팅을 하러 보고타 전력청에 갔습니다. 회의실에 갔더니 큰 회의실에 열댓 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프로젝트가 두 개라서 엔지니어링 회사 두 곳과 전력청 사람 등 3개 회사가 모였죠. 한 명이 저에게 영어로 묻고 제가 답하면 자기들끼리 토의하곤 했죠. 2년 차 직장인이 혼자서 이런 회의를 할 가능성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엄청 긴장되고 떨렸죠. 😨
점심시간이 되자 자기들이 산다고 저를 데리고 나갔습니다. 차를 타고 한참 갔는데 가면서 저에게 물었습니다. 뭐라 설명하며 괜찮겠냐고 물어서 제가 무조건 트라이한다고 했습니다. 저를 보고 괜히 웃는 게 수상해 보였습니다. 콜롬비아 사람에게 저 멀리 동양의 사우스 코리아에서 온 사람이 되게 신기해 보였나 봅니다. 식당은 건물이 아니라 도로의 로터리 안에서 큰 삼각뿔을 만들어 그 위에 고깃덩어리를 올려서 장작불로 고기를 굽고 감자와 맥주를 팔고 있었습니다. 돈을 내면 고기를 큰 칼로 툭툭 썰어서 쟁반에 올리고 감자와 맥주를 같이 주더군요. 식기도 없어서 손으로 먹는 곳이었습니다. 근데 맛은 좋더군요. 고기도 감자도 맛있고 맥주도 좋았습니다. 제가 잘 먹으니 그 사람들도 좋아하더군요.
(아래 사진과 비슷한 그릴인데 회전이 되는 형태였죠)
3일 후 그날 오후에 비행기를 타야 해서 빡세게 미팅하고 호텔에 가서 손으로 회의록을 썼습니다. 그땐 노트북도 없었고 컴퓨터도 하드디스크가 없던 시절이었죠. 그렇게 손으로 쓴 회의록을 아침에 가서 확인 시키고 해서 3일째 아침에 회의록을 완성해서 다 사인을 받았습니다. 사실 그 사람들이 제가 3일 후에 가야 한다고 했더니 2주는 걸릴 거라고 해서 저는 초보라 3일 후 비행기 못 타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엄청 애를 태웠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회사에는 핑계들 대고 주말을 끼고 미팅을 해서 주말엔 콜롬비아 구경도 허고 할 걸 하는 후회가 되기도 하는데 그땐 그런 걸 몰랐었죠.
그때 변압기 수리를 위해서 회사에서 반장 한 분을 보냈는데 이 반장님 대단하셨죠. 스페인어도 못하고 영어도 잘 못하는데 목에 스페인어 적은 종이 걸고 그걸 보여주며 작업을 지시하고 해서 결국 변압기 수리를 끝냈다고 하더군요. 무데뽀 대한민국이었습니다. 야만의 시절이었죠. 😱
비싼 호텔에 묵느라 출장비가 간당했지만 그래도 기념품과 선물을 뺄 수는 없었습니다. 그때 해외 출장은 큰 벼슬이어서 선물 안 사 가면 큰일 났었죠. 출장은 적자로 끝났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보고타에서 뉴욕으로 뉴욕에서 알래스카를 거쳐 소련이 미사일로 대한항공 비행기를 격추시켰던 그 길로 해서 한국에 돌아왔었습니다. 그래서 알래스카도 공항엔 발자취를 찍었었네요.
그 후론 콜롬비아에 가보질 못했습니다. 한 번의 출장으로 제 마음에 깊이 각인되었던 출장 길과 콜롬비아였습니다. 해발 2700미터의 고지대에 새워진 보고타 이젠 다시 가보기 어렵겠죠? 긴 인생에서 짧은 일주일이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나는 첫 해외 출장길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첫 해외 출장은 두렵고 기대되고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겠지만 저에게는 정말 특별한 첫 출장이었습니다.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했던 잊지 못할 추억을 함께 나누어 보았습니다.
다음에도 재미있고 놀라운 에피소드로 돌아오겠습니다.